커피와 문학

커피와 문학 중 한국 소설에서 시간의 관념으로 본 커피와 근대성

jhjung1720 2025. 7. 10. 13:19

한국 소설에서 커피는 단지 음료가 아니라, 시간의 흐름과 근대적 감각의 변화가 압축된 문화적 기호다. 특히 근대화가 본격화된 20세기 중반 이후, 작가들은 도시의 다방이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을 통해 새로운 시간의 리듬과 감각을 탐색했다.

농경 사회에서 순환적이고 반복적이던 시간의 감각은, 도시와 기계의 리듬에 따라 선형적이고 조급한 시간으로 전환되었다. 그 전환의 지점에 커피가 존재했다. 커피는 빠른 노동, 깨어 있는 이성, 끊임없는 선택과 결정을 상징했고, 그것을 마시는 인물들은 근대적 자아의 조급함, 고립, 혹은 지루함을 함께 경험했다.

시간의 관념으로 본 한국 소설속의 커피와 문학

본문에서는 한국 소설 속 커피가 근대적 시간 감각의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며, 인물의 내면과 삶의 리듬에 어떤 문학적 역할을 수행하는지 알아보고자 한다.

 

다방의 시간성과 근대적 조급함

1960~70년대 한국 소설에 등장하는 다방은 도시적 근대성이 가장 압축적으로 드러나는 공간이었다.

김승옥의 단편 "서울, 1964년 겨울"에서는 다방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주인공이 시계와 창밖의 흐릿한 도시 풍경을 번갈아 바라본다. 그는 시간의 방향성과 목적성을 상실한 채, 무력한 대화를 반복하며 커피 잔을 기울인다. 커피는 집중을 위한 음료가 아니라, 무언가를 기다리며 시간을 소비하는 행위의 상징이 된다. 작가는 커피잔에 남은 흔적을 통해 도시인이 소비하는 비생산적 시간을 은유한다. 그 시간은 과거의 순환적 계절 시간과 달리, 목적 없는 흐름이며, 자기 완결적이지 않다.

이러한 시간의 흐름은 근대 도시가 강요하는 생존의 리듬과 무관하지 않다.

최인훈의 "광장"에서도 주인공 이명준은 도심 호텔의 커피숍에서 시간을 흘려보내며 자신의 정치적 위치를 자문한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흘러가는 시간은 물리적으로는 짧지만, 심리적으로는 복잡한 기억과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근대적 시간은 효율을 강요하지만, 인물은 그 시간 속에서 자주 길을 잃는다. 이처럼 커피는 시간의 비가시성을 드러내는 장치로 사용되며, 다방은 목적 없는 시간의 소비를 연기하는 무대가 되었다.

 

커피의 리듬과 내면의 시간

근대 소설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외부 세계의 시간과 내면의 시간이 어긋나는 지점을 포착한다. 박완서의 작품에서는 중년 여성이 다방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과거의 기억을 더듬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그녀는 지금의 커피 향보다, 20년 전 다방에서 마셨던 커피 맛을 기억한다. 커피는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매개가 되며, 그녀의 내면에서는 시간의 선형성이 무너지고 회상의 파편들이 소용돌이친다. 근대 시간은 직진하지만, 인간의 내면은 비선형적이다. 작가는 커피라는 일상적인 도구를 통해 그 시간의 균열을 표현한다.

이러한 서사는 독자가 커피라는 감각적 매체를 통해 인물의 내면과 교감할 수 있도록 만든다.

커피잔을 비우는 동작은 실질적으로는 몇 분의 일이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인물은 수십 년의 인생을 되짚는다. 커피의 향은 후각적 기억을 자극하고, 시간은 감각의 층위 속에서 압축적으로 재현된다.

작가들은 이러한 장면을 통해 근대적 시간 감각이 인간의 심리와 어떻게 충돌하고 왜곡되는지를 문학적으로 탐색했다.

 

커피와 시간의 문학적 함의

커피는 한국 소설에서 시간의 속도와 방향성을 가시화하는 도구였다. 도시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장면은 ‘지금, 여기’의 시간성을 강화함과 동시에, 과거의 회상과 미래의 불안을 교차시키는 장면으로 자주 설정된다.

소설 속 인물은 커피를 마시며 시간을 벌거나, 시간을 견디거나, 시간을 회상한다. 커피는 시간을 통제하는 도구가 아니라, 시간에 사로잡힌 인간의 고통을 드러내는 기호였다.

근대화는 시계와 함께 움직였고, 커피는 그 시계를 유지하는 연료가 되었다. 그러나 문학은 그 커피 향 안에 들어 있는 공허, 지루함, 초조함, 기억의 덩어리까지도 담아냈다. 작가들은 커피를 통해 “효율적이지만 비인간적인 시간”과 “감각적이지만 무력한 시간” 사이에서 방황하는 인간을 그렸다.

결국 커피는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근대성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시간이 어떻게 살아지고, 소비되고, 왜곡되는지를 가장 섬세하게 드러내는 문학적 기호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