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와 문학

커피와 문학 중 일제강점기 카페 장면에 나타난 저항과 근대화

jhjung1720 2025. 7. 2. 07:00

일제강점기의 한국 문학은 역사적 비극과 문화적 변화가 겹겹이 얽힌 공간이었다. 특히 이 시기 소설 속 카페 장면은 단순한 사교와 유희의 장소로 그려지지 않았다. 카페는 근대화의 전위적 공간이면서도, 식민 권력과 민족적 저항의 긴장이 교차하는 독특한 무대였다. 작가들은 카페에서 벌어지는 일상의 단면을 통해, 식민지 조선인이 서구 문명을 수용하는 동시에 그로부터 해방되고자 하는 이중적 욕망을 형상화했다.

커피를 마시며 서로의 눈빛을 주고받는 인물들은 표면적으로는 세련된 근대인처럼 보이지만, 내면에는 불온한 분노와 저항의 기운이 고조되어 있었다. 이처럼 카페는 근대화의 산물이자 식민지 현실의 모순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이었다. 본문에서는 일제강점기 카페 장면이 어떤 방식으로 저항과 근대화의 서사를 동시에 담아내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카페와 근대적 자아의 발견

일제강점기의 도시, 특히 경성과 부산에는 다수의 서구식 카페가 들어섰다. 카페는 근대적 소비와 문화를 상징하는 공간이었고, 새로운 계층의 정체성을 연출하는 무대였다. 염상섭의 소설 "표본실의 청개구리"에는 카페에서 신문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는 인물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들은 식민지 권력의 억압 속에서도 자신만의 근대적 자아를 찾고자 노력한다. 커피를 주문하는 행위는 더 이상 단순한 소비가 아니었다. 그것은 ‘식민지적 후진성’을 벗어나려는 작은 선언이었다.

그러나 카페의 내부 풍경에는 언제나 식민 권력의 흔적이 배어 있었다. 일본 상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서양 음악이 흘러나오고, 일본어로 메뉴가 쓰여 있는 모습은 근대화가 식민 지배와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작가들은 이 모순적 장면을 통해, 조선인이 근대화를 욕망하면서도 민족적 자존감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내적 갈등을 묘사했다. 커피를 마시는 순간, 인물들은 자신이 근대적 문명인에 가까워졌다고 느끼면서도, 그 문명이 식민 권력의 부산물이라는 자각에 부딪혔다. 이러한 이중 의식이야말로 카페 장면의 본질적 긴장이었다.

 

카페와 은밀한 저항의 기호

카페는 때로 표면적 근대화의 공간이면서, 동시에 은밀한 저항의 기호로 기능했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카페에서 비밀스러운 만남을 주선하거나, 조국의 현실을 토론하는 대화를 나누었다. 이상(李箱)의 작품 "날개"에서는 주인공이 카페에서 느끼는 정서가 명백히 이중적이다. 그는 카페의 서구적 분위기에 매혹되지만, 곧바로 그 속에서 느껴지는 허무와 식민 현실에 대한 자각으로 번민한다. 카페 테이블에 앉은 그의 시선에는 식민 지배에 대한 은밀한 적대감이 숨어 있다.

염상섭의 다른 작품에서는 카페가 민족적 저항의 정보가 오가는 장소로 그려지기도 한다. 커피잔을 사이에 둔 대화 속에서 독립운동의 조짐이 퍼져나가고, 억눌린 감정이 짙게 응축된다. 작가들은 이러한 장면을 통해 카페가 일상과 저항이 교차하는 특별한 장소임을 드러냈다. 커피는 서구적 세련됨의 표상이었지만, 동시에 민족적 각성을 부추기는 ‘이질적 자극’이었다. 이 모순적 상징은 당대 지식인이 느끼던 복합적 심리를 섬세하게 환기했다.

 

근대화의 욕망과 저항의 역설

일제강점기의 카페 장면이 특별한 이유는, 그것이 근대화의 욕망과 식민 권력에 대한 저항이 동시에 작동하는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들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스스로를 새로운 계몽주의의 주체로 자처했지만, 그 자리 자체가 일본 자본과 식민 행정이 만들어낸 체제의 일부였다. 카페의 서구식 인테리어와 일본식 운영 구조는 근대성의 표면을 갖추면서도 철저히 식민지적이었다. 작가들은 이러한 역설을 강조하며, 독자들에게 식민지 근대화의 본질적 불완전함을 보여주었다.

이상과 염상섭은 카페를 ‘무력한 저항의 공간’으로 자주 그렸다. 주인공들은 커피잔을 기울이며 민족의 현실을 논했지만, 논의는 언제나 결론 없는 허무로 귀결됐다. 카페에서 느끼는 근대적 세련됨은 결국 식민 권력의 표면적 장식에 불과하다는 자조적 인식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이러한 모순이야말로 조선 지식인의 자의식과 저항의 씨앗이었다. 그들은 카페를 떠날 수 없었고, 커피를 마시며 분노와 동경을 동시에 품었다. 이런 복합적 정조야말로 당시 문학이 담아낸 식민지 근대화의 진실이었다.

결국 일제강점기의 카페 장면은 근대화의 성취와 저항의 불가능성을 동시에 드러내는 문학적 은유였다. 커피 한 잔의 향기는 자유와 속박의 경계를 넘나들었고, 카페 테이블 위의 작은 대화는 식민지 조선인의 불안과 열망을 증언했다. 그 모순된 감정이야말로 식민지 문학의 가장 생생한 표정이었다.